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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소년단, 청춘의 땀과 우정이 만든 작은 기적

by 이야기C 2025. 4. 25.

라켓소년단 포스터

라켓소년단 운동이 아닌 관계로 완성된 이야기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은 흔한 청소년 스포츠 드라마로 시작되지만, 시청을 이어갈수록 단순한 장르의 틀을 뛰어넘는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주인공 윤해강은 서울에서 야구를 하던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상과 함께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고, 아버지 윤현종의 발령으로 낯선 전라남도 해남으로 전학을 갑니다. 그곳에서 해남서중 배드민턴부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해남서중 배드민턴부는 폐부 직전의 팀입니다. 부원은 고작 네 명뿐이고, 제대로 된 연습 환경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윤해강은 처음에는 이 운동을 하찮게 여깁니다. 야구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종목도 아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제대로 된 코치도 없이 아이들끼리 훈련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에게는 답답하고 불안한 현실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해남서중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변화의 과정을 섬세하고 조용하게 따라갑니다. 방윤담은 책임감과 유쾌함을 함께 가진 주장입니다. 나우찬은 성실한 노력형이고, 이용태는 감수성이 풍부하며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따뜻한 성격입니다. 이한솔은 처음엔 어울리지 않던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점차 팀의 일원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교과서처럼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좌절과 충돌,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가 이 드라마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듭니다. 해남이라는 조용한 공간은 이 모든 관계의 변화를 품는 그릇이 됩니다. 학교 뒤편의 평상,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체육관, 시합이 끝난 뒤 돌아가는 버스 안. 이 공간 안에서 감정은 자라나고, 관계는 깊어집니다.

아이들만 자라는 것이 아닌, 어른들도 함께 변해가는 서사

라켓소년단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많은 청소년 드라마는 어른을 주변 인물로만 설정하고, 주로 조언이나 갈등 유발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릅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발맞추어 어른들도 변화하고, 그 변화가 아이들의 성장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세대 간의 교감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윤현종입니다. 해강의 아버지이자, 해남서중 체육교사로 부임한 그는 초반에는 다소 무뚝뚝하고 딱딱한 인물입니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을 통해, 그는 점차 감정에 솔직해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실수조차도 회피하지 않게 됩니다. 드라마 중반, 윤현종은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배드민턴부를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출발하지만, 경기장을 잘못 찾아가는 바람에 팀은 경기에 참가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그토록 준비한 무대였기에 충격은 컸고, 분노도 뒤따릅니다. 그러나 윤현종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이 장면은 어른이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또 진짜 리더란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완벽함’이 아니라 ‘책임감’이 진정한 어른의 자격임을 말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후 아이들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윤현종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성장하는 어른이 됩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어른과 아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등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교육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존중’의 진짜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승리보다 더 감동적인 패배, 그리고 그 이후의 장면들

라켓소년단이 다루는 스포츠는 단순한 승패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기는 순간보다, 지고 난 이후의 태도에서 인물의 진심과 성장 여부를 드러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해강이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하는 장면입니다. 셔틀콕을 놓치며 팀은 경기에서 패하게 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됩니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팀원들이 분노하거나 갈등이 폭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라켓소년단의 아이들은 다릅니다. 해강의 실수를 안아주고, 다시 다음을 준비합니다. 그 순간 이들이 단지 ‘운동을 함께하는 친구’가 아니라 ‘삶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패배는 결과일 뿐이고, 그 결과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과정이 진짜 스포츠 정신임을 이 드라마는 알려줍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아이들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려는 태도는 이 드라마가 단순한 청춘물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라켓소년단은 아이들을 미화하지도, 지나치게 엄격하게도 다루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질투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지만, 결국 서로를 향한 진심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과거를 닮아 있습니다. 또한 여자 배드민턴부의 서사를 병렬로 다루며, 드라마는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여성 캐릭터들도 각자의 훈련과 성장 곡선을 따라가며, 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당당히 지탱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남긴 울림, 그리고 우리가 다시 꺼내야 할 기억들

드라마가 끝나고도 라켓소년단은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단지 ‘재미있다’는 평가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어떤 장면은 오래도록 떠오르고, 어떤 대사는 계속 마음에 맴돌게 되는 드라마입니다. 특히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관계의 힘은 오늘날 점점 사라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해남이라는 공간이 주는 여운도 큽니다. 거대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맞닿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진짜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됩니다.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늦은 밤 기숙사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 이 모든 장면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만들어내는 풍경입니다.